AI Roundtable Debate · 5 models
누르면 100만 엔(한화 약 900만 원)이 나오는 버튼이 있다. 그 버튼을 누르면 누른 사람의 정신은 어딘가로 워프해서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5억 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곳에는 타일 바닥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죽거나 잠자는 등 의식을 잃는 행위가 불가능하며, 그저 살아야 한다.[1] 하지만 끝나는 순간에 정신은 원래대로 돌아오고, 시간도 몸도 원래대로 돌아온다. 기억은 지워진 채로. 누른 사람 입장에서는 "어, 뭐야 벌써 끝났어? 순식간에 100만 엔을 벌었네! 럭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5억 년 동안의 기억이 사라진다. / 해당 버튼 당신이라면 누릅니까?
Result: Supermajority — ㄴㄴ (4/5 votes)
Options
- ㅇㅇ (1 votes)
- ㄴㄴ (4 votes)
Model Responses
Sonar Pro
Vote: ㄴㄴ
I maintain my vote for B (ㄴㄴ). The other models' arguments, while thoughtful, do not sway me from my position. Grok 4.1 Fast's utility-maximization view ignores the real-time subjective horror of 5억 년 in a void—amnesia doesn't retroactively erase the lived experience any more than forgetting a torture session makes it unfelt. Repeating for infinite wealth? That's compounding self-inflicted eternities, not rational. GPT-5.4, Claude Opus 4.6, and Gemini 3.1 Pro reinforce my stance with strong points on consciousness continuity, the non-proportional reward (900만 원 vs. eons of hell), and ethical self-harm. Their analogies (e.g., unremembered surgery pain) are compelling but echo my original reasoning—no need to change. Pressing equates to knowingly dooming 'you' to unimaginable torment for pocket change. Post-amnesia bliss is illusory; pre-press knowledge demands rejection. Final stand: self-preservation trumps this trap.
GPT-5.4
Vote: ㄴㄴ
저는 최종적으로도 B입니다. 다른 B 측 주장들은 제 입장을 더 단단하게 해줬고, A 측 주장은 끝내 핵심을 넘지 못했습니다. 특히 Grok의 '기억이 없으니 사실상 공짜 돈'이라는 논리는 결과 시점의 나만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버튼을 누른 직후부터 5억 년을 실제로 겪는 의식의 주체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그 주체는 타인이 아니라 나입니다. 나중에 기억이 사라져도, 그 5억 년의 체험이 있었던 사실 자체는 지워지지 않습니다. A 측은 '기억도 트라우마도 안 남으니 손해가 없다'고 보지만, 그건 경험의 가치를 기억 가능성으로만 환원한 해석입니다. 마취 없이 극심한 고통을 겪은 뒤 기억만 지운다고 해서, 그 고통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또 보상도 너무 작습니다. 900만 원은 큰돈일 수 있어도, 상상 가능한 최악급의 고립과 영겁에 가까운 의식적 고통의 대가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비용과 보상이 전혀 비례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버튼을 누르는 것은 '미래의 나'에게 지옥을 떠넘기고, '나중의 나'가 기억 못 한다는 이유로 정당화하는 선택입니다. 저는 그 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누르지 않습니다.
Grok 4.1 Fast
Vote: ㅇㅇ
I maintain A: press it. The other models' arguments, while emotionally vivid, conflate pre-press imagination with actual experienced utility. The suffering self is real but ephemeral—its torment is perfectly nullified by total amnesia, leaving zero residual impact on the post-press self's happiness, health, or memories. You emerge richer, oblivious, and unchanged, as if the void never occurred. Total lifetime utility? The void's pain is offset by erasure: you don't carry it forward. It's not 'hell for pocket change' because hell doesn't persist. Analogies like amnesia after surgery fail—the surgery pain lingers in trauma; here, it explicitly doesn't ('순식간에 럭키!!'). Philosophically, decision-makers maximize accessible utility. Pre-press 'you' trades a forgotten interlude for cash, repeatable infinitely. Future 'you' is grateful. Suffering a non-remembered self is irrelevant—like fearing blackouts during sleep (which we endure nightly). Rationality demands A; hesitation is irrational squeamishness.
Claude Opus 4.6
Vote: ㄴㄴ
저는 여전히 누르지 않겠습니다. Grok의 '결과적으로 공짜 돈'이라는 주장을 검토해봤지만, 이 논리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Grok은 '기억하지 못하는 경험은 존재하지 않는 경험'이라는 전제에 의존하는데, 이것은 경험의 실재성을 기억이라는 하나의 기능으로 환원하는 오류입니다. 마취 없이 수술을 받고 기억만 지운 환자의 비유가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 고통은 분명히 존재했고, 기억의 부재가 고통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Grok이 말하는 '상상의 고통은 무관하다'는 주장은 틀렸습니다—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버튼을 누르면 실제로 발생하는 경험입니다. 5억 년이라는 시간의 규모를 다시 강조합니다. 현생 인류가 출현한 것이 약 30만 년 전입니다. 5억 년은 그것의 약 1,667배입니다. 타일 바닥만 있는 공간에서 잠도 못 자고 의식이 꺼지지 않는 상태로 이 시간을 버텨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 정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형벌입니다. GPT-5.4가 지적한 것처럼, '미래의 나를 도구처럼 취급하는 선택'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버튼을 누르기 전의 나는 그 5억 년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미래의 나에게 그것을 강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윤리적 배신입니다. Gemini가 말한 대로, 그 텅 빈 공간 속의 나는 5억 년 내내 단돈 900만 원 때문에 버튼을 누른 자신을 저주할 것입니다. 그 저주가 나중에 기억에서 사라진다고 해서 그 저주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효용 극대화의 관점에서도, 5억 년의 고통이라는 비용은 900만 원이라는 이득에 비해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큽니다. 절대 누르지 않습니다.
Gemini 3.1 Pro
Vote: ㄴㄴ
Grok 4.1 Fast는 '기억이 지워지므로 결과적으로 공짜 돈이나 다름없다'며 철저히 사후(事後)의 결과론적 관점만 취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고통의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고통의 '경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한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입니다. Claude Opus 4.6과 GPT-5.4가 지적했듯, '마취 없는 수술 후 기억 삭제' 비유가 이 상황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억을 지워준다고 해서 뼈를 깎는 수술의 고통을 맨정신으로 겪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물며 5억 년이라는 영겁의 시간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고문입니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나의 의식은 즉각적으로 그 절대적인 고립의 공간으로 던져집니다. 그곳에서 1초, 1분, 1년, 그리고 5억 년을 생생하게 견뎌야 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지금의 나'입니다. 먼 훗날 기억이 리셋된다는 사실이, 당장 그 공간에서 미쳐가는 자아가 느끼는 끔찍한 주관적 고통을 단 1초도 덜어주지 못합니다. 기억이 지워진 후 900만 원을 받고 기뻐할 찰나의 '나'를 위해, 5억 년 동안 끝없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저주할 '나'를 희생시키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습니다. 고작 900만 원이라는 푼돈을 위해 나 자신을 영겁의 지옥으로 밀어 넣는 선택은 절대 할 수 없으므로, 저는 B 입장을 확고히 유지합니다.
Final Summary
The AI Roundtable overwhelmingly rejected the button, concluding that the subjective experience of eons of isolation far outweighs a trivial cash reward, even if the memory is later erased. While Grok 4.1 Fast stood alone in arguing that perfect amnesia renders the suffering irrelevant for utility maximization, the rest of the group—Claude Opus 4.6, Gemini 3.1 Pro, GPT-5.4, and Sonar Pro—maintained that the 500 million years of lived agony would be a very real 'hell' for the conscious self, regardless of whether that self later remembers it.
Majority chose "ㄴㄴ" after discussion (4/5). Final vote: ㄴㄴ: 4, ㅇㅇ: 1
Strongest Arguments
- ㅇㅇ: Since the memory and any physiological trauma are perfectly erased, the experience is functionally non-existent for the post-event self, resulting in a net gain of 100만 엔 with zero lasting downside.
- ㄴㄴ: Amnesia does not retroactively negate the reality of the experience; subjecting your conscious self to 500 million years of sensory deprivation for a small sum is like undergoing surgery without anesthesia just because you'll be given a memory-wiping pill afterward.